풍수칼럼

풍수 공부에 최적인 신륵사

최고관리자 0 9 04.01 10:26

대부분의 사찰이 산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신륵사는 남한강변에 위치하여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1874년 신륵사 중수기에서는 이곳의 경관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륵사는 고려시대 나옹이 머물던 곳이며항상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높은 탑과 오래된 비가 있는 고풍스런 곳으로 목은(牧隱) ‘이색을 비롯해 많은 문인들이 로써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여주는 산수가 청수하고 조망이 좋으며이와 더불어 신륵사는 높고 시원한 것이 겸하여 있으니 그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김병익

신륵사는 신라시대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 정확한 년대는 알 수 없다분명한 것은 고려 말에 나옹선사(1320-1376)가 이곳에서 머물다 입적한 곳이라는 기록이 있다그래서 이곳에는 나옹선사를 다비식한 장소가 3층 석탑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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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는 고려 공민왕의 스승이자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당대 최고의 고승으로 靑山歌라는 유명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신륵사는 고려 말 대학자 목은 이색이 머물며 불사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이색(1328-1396)은 고려 말의 학자로 포은 정몽주야은 길재와 더불어 삼은(三隱)으로 불린다삼은이란 조선에 동조하지 않고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킨 세 명을 이르는 말이다.

그의 제자들은 고려에 충절을 지킨 사람도 있지만 조선의 창업에 동참한 인물도 많다정몽주하륜정도전길재 등은 모두 그의 제자들이니 학자로서 추앙 받는 인물이다.

조선시대에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영릉을 관리하는 원찰(願刹)이 된다. 원찰이란 망자의 위패를 모셔 놓고 명복을 비는 사찰을 말한다.

한편 대부분의 사찰이 한적한 산속에 위치하는 것과 달리 신륵사는 특이하게 강변에 위치하고 있다사찰의 주목적 중 하나가 세속을 떠나 조용한 공간에서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입지가 된다.

더구나 이곳처럼 풍광이 뛰어난 곳이라면 많은 탐방객들로 인해 사찰 고유의 정적인 공간을 유지하기는 더욱 쉽지 않은 곳이다.

그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곳은 사찰의 입지로는 적합하지 않은 곳이라 할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구하고 신륵사는 몇 차례의 화마를 극복하고 천년 고찰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데이는 지리의 힘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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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륵사 주산은 鳳尾山(157m)으로 봉황의 꼬리라는 명칭이다봉미산에서 연결된 산줄기는 신륵사 뒤편 300m 지점에서 세 줄기로 나누어진다한 줄기는 우측으로 뻗어 신륵사의 백호가 되어 터를 보호하는 역할이고 좌측 산줄기는 전탑과 누각(강월헌)을 지나 강변까지 이어지면서 신륵사의 청룡이 되어 강바람을 막아준다그리고 중심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마치 탯줄처럼 본당(극락보전)으로 연결되고 있다.

3개의 산줄기 중 본당으로 들어가는 산줄기가 가장 양호하니 정맥이고 좌우의 산줄기는 이를 보호하는 역할의 방맥으로 좌청룡·우백호가 되었다이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신륵사는 풍수이론에 부합되게 자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렇듯 주산에서 이어진 용맥 끝에 자리한 사찰이나 집들은 부석사봉정사오죽헌임청각서백당육영수 생가홍명희 생가 등이 있다.

가운데 산줄기는 또 하나의 작은 산줄기를 만들었는데그곳에 나옹선사 부도가 자리하고 있다나옹선사는 무학대사 스승으로 풍수에도 일가견이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이곳 역시 좌우의 능선이 포근히 감싸주는 지점에 남향으로 자리했으니 좋은 기운이 넘치는 파워스팟이다.

나옹화상은 말년에 이곳에 머물다 입적했으니 이곳 부도 터는 자신의 정했을 것으로 짐작된다그의 부도는 양주 회암사지에도 있는데스승 지공선사제자 무학대사 부도와 함께 있다.

한편 전탑 위쪽에는 소나무가 많은데수목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오목한 제비둥지 같은 지형에 남향으로 자리하면서 풍수에서 요구하는 장풍득수와 배산임수를 동시에 이룬 곳이다.

하지만 풍수에서 온전한 땅은 없듯이 이곳 신륵사도 지형적 결함이 있다특히 강변과 접하다보니 강바람이 세다는 점은 입지에서 큰 결함이 된다그리하여 신륵사에서는 곳곳에 비보를 하여 고쳐 쓰고자 하는 적극적 의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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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신륵사는 강과 불과 200m 남짓 떨어진 곳이다 보니 정면에서 부는 강바람이 만만치 않다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극락보전 앞에 구룡루를 지어 안산 역할을 하도록 했다그리고 구룡루 앞에는 나무를 심어 2중으로 강바람을 막고자 비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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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신륵사 외곽은 바람이 세지만 경내에는 바람이 잔잔한 편이다실제로 강월헌 누각에 오르면 사찰 경내와 다른 시원한 강바람을 느낄 수 있다.

신륵사는 겨울에는 북서풍이 불고 여름에는 동남풍이 주로 분다그 이유는 신륵사 우측 능선이 요함하여 취약하기 때문이다이는 경복궁의 우측인 자하문 고개가 깊이 함몰해 북서풍이 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방비하고자 V형의 고갯마루 아래에 부도 탑 2기를 배치했다원래 이 부도 탑은 조사당 뒤편에 있던 것이지만, 1966년 옮긴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부도는 사찰에서 가장 취약한 지점에 위치했는데열반해서도 사찰을 보호하려는 불심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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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신륵사 좌측 능선에서 전탑의 좌측 경사면을 보면 U자형으로 움푹 파여진 것을 볼 수 있다이는 오랜 세월 지속적인 바람에 의한 침식작용으로 생긴 현상이다이것으로 보아 남한강 강바람은 좌측 능선 중 가장 허한 전탑부분을 향해 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방비하고자 강변의 좌측 능선에 높은 전탑을 세웠으며은행나무 등의 키가 큰 나무를 집중적으로 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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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부도가 있던 지점과 전탑이 있는 곳을 연결하면 일직선으로 북서풍과 동남풍의 바람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신륵사 극락보전은 절묘하게 바람길을 피해서 자리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미흡하다고 판단해 극락보전 부근의 바람길에 향나무를 심어 다시 한 번 바람을 거르고자 했다.

바람길 지점에 전탑은행나무향나무부도를 집중적으로 배치해 비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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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2016년 2월 풍향계를 이용해 측정해본 결과 북서풍의 빈도가 많았으며극락보전 경내에서는 바람이 흩어져 안정적인 상태가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그리하여 이점은 등재학술지에 발표되기도 했다.

이상을 보면 신륵사는 지형적 결함을 정확히 알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보완하며 사찰을 지켜온 것으로 볼 수 있다.

한 가지 첨언한다면 신륵사의 입장에서는 극락보전 우측 V형 지점이 가장 취약하므로 그 지점에 보토를 하고 나무를 심는다면 매서운 북서풍을 더욱 완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론적으로 신륵사에서는 남한강의 뛰어난 풍광을 감상할 수 있으며한여름에 강월헌에 오르면 시원한 강바람으로 더위를 물리칠 수 있다.

그리고 극락보전과 나옹선사 부도탑은 봉미산의 모든 기운이 맺힌 파워스팟이니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거기에 더해 부족한 땅을 고쳐 쓰는 비보의 지혜까지 엿볼 수 있는 곳이니 풍수공부에 최적인 곳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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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선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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